넌 어디사는 누구냐?


새로운 곳에서의 나의 행보는 무작위로 결정한 순서대로 움직이는 것 은 아니다. 전화기는 눈과 귀가 되고 , 자동차가 발이 되어 준다. 이제 겨우 사람구실 하게 된거다. 그 다음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때 그들이 궁금해 하는 첫번째가 나의 정체성 일 것이다.


이후 어떠한 행보를 이어가더라도 나 자신을 설명할 전제가 필요하며, 그것을 증명할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이 곧 나의 명함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유명하진 않아도 이름이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여권을 가지고 있으니 다음으로 주소를 갖기로 했다.


미국땅 에서의 둘째날

어제밤 숙소에서 잠들기 전까지 아이를 보낼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에도 틈틈히 찾아보긴 했지만 감이 오질 않았다. 열심히 구글링 해 보아도 숫자만으로 결정 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미국 공립학교에 대해 순위를 매겨놓은 사이트 들이 있다.


* * https://www.usnews.com * https://www.greatschools.org     Page Capture* https://www.usnews.com * https://www.greatschools.org Page Capture

https://www.greatschools.org

https://www.usnews.com

등등의 사이트 들을 보며 공립학교의 List를 찾아 비교 했다. 노트북과 전화기를 모두 동원하여 그 중에 적당한 학교를 고르고 구글맵과 질로우 사이트를 열어 삼자 비교를 해 가며 우리가 어디에 살면 좋을지를 결정 했다. 사실 이때 내가 간과한것은 NC 주에 주도인 Raleigh 에 살자고 했기 때문에 그 한곳만을 타겟팅 하여 자료조사를 한 것이다. 


여러 도시를 검색 할 만큼의 지식이 없었고 ,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지금 따지고 보면 NC주에서 가장 핫 한곳은 Cary(캐리) 지역과 Charlotte(샬럿) 이다. 사실 샬럿을 가장 많이 찾아보고 그곳을 최종 정착지로 삼았었으나 기타의 이유로 인해 랄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 이유는 이후에 포스팅 하겠음 )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당시에는 Raleigh 였다. 


그런 이유로 선택된 학교가 지금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다. 당시 스쿨 스코어는 "8" 이었다 . 여러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10점 만점의 스코어링을 하게 되는데 그 중 8 이면 나쁘지 않은 스코어 였다. 랄리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스코어였다. ( 지금은 7로 떨어졌다 ㅠㅠ) 더 좋은점은 둘째가 다닐 Middle School과 붙어 있다는 점이다. 초,중,고 가 한줄로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그리고 그곳에서 걸어서 통학 할 수 있는 집을 찾았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므로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를 통학 할 수 있어야 했다. 계절별로 필요한 여러가지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점과 , 보안을 고려하여 아파트가 적당 했다. 


어젯밤에 가져온 옷중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구겨지지 않도록 화장실에 뜨거운 물로 스팀처리를 해서 걸어두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 되었다. 가족모두 말끔히 빼 입고 아파트 계약을 위해 길을 떠났다.


가는길에 은행에 들러 계좌 개설을 해야 했다. 은행 업무는 우리나라 처럼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우선 사무실에서 우리를 담당하는 직원과 일대일 대면을 통해 계좌를 개설 한다. 우리나라에 은행 2층  VIP 코너 에서 이루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


부부공동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고 크레딧 카드를 신청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크레딧" 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카드 신청은 힘들고 몇개월간 캐쉬카드를 열심히 쓰며 크레딧을 모으면 카드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미국은 모든것이 크레딧 이다. 이후 이 크레딧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족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터였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오늘의 메인이벤트를 위해 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찍어둔 아파트의 위치를 확인한 후 동네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무엇보다 학교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이 갈 학교는 고교의 경우 풋볼 코트가 3개 , 농구장이 세개 , 실내 체육관 , 테니스 코트..등등 다 합쳐 우리나라의 대학 만 했다. 중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매우 아름다운 배치다. 주차장 또한 엄청나게 넓다. 고교의 경우 학생들도 차를 가지고 등교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과!!


Zillow Site CaptureZillow Site Capture


아파트 사무실로 향했다. 미국의 아파트는 대개 회사의 소유다. 개인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이 사무실을 찾아가 렌트를 하면 된다. 물론 아닌경우도 있겠지만 아직은 보지 못햇다. 


사무실 공간을 이쁘게 꾸며놓았다. 스타벅스 커피가 마련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카페테리아 공간으로 가서 커피 두잔을 내렸다. 아이들에게는 핫초코를 타 주고 소파에 대기 시켰다. 눈에 보이는 금발의 직원에게 렌트를 하고싶다고 하자 앞쪽의 빈 책상으로 나를 안내하며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흑인 청년이 열린문으로 상체를 틀어 나를 힐끔 쳐다본다. 저사람 이구나...


키가 크고 얼굴이 선하다. 좋은 느낌을 풍기는 청년이다. 미혼인것 같다. 아무 상관이야 없겠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리에 앉은 "제프( 그의 이름이다)"는 나와 간략한 인사를 한 후 뒤에 앉은 우리 가족을 힐끔 쳐다본다. 첫인상을 중요시 하는 녀석인것 같다. 


집을 렌트하고 싶어. 방은 두개 이상 넓이는 1,000 스퀘어핏 정도면 좋겠어. ( 연습한 대로 잘 나와 주었다.ㅋㅋㅋ)

음 마침 적당한 집이 하나 있는데 조금 특이점이 있어.

으흠~. ( 자연스러운듯..^^)

같은 넓이의 방 세개짜리 집이 있는데 여기는 방이 두개이고 Den 이 있어. 그리고 차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대신 100불이 빠지지. 물론 주차 공간은 있어. 창고가 없을 뿐. 나중에 정 원하면 차고만 따로 렌트할 수도 있어. 집이랑 붙어있지는 않지만.

일단 봤으면 좋겠는데?

좋아 세개의 집을 보여주지.


놀이동산 기차를 연상시키는 긴 골프카트를 타고 가족 모두 집을 보러 갔다. 일반적인 쓰리룸, 투룸 , 그리고 아까 이야기 한 집. 두개는 다음달 정도 들어갈 수 있고 , 마지막 집은 비어있다. 뭘 고민한단 말인가?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마지막 집을 선택했어. 차고는 필요없어 지정된 주차 공간만 주어진다면.

OK. 서랍속에서 서류뭉치를 꺼낸다. Sin No를 포함한 개인 정보를 요구 한다.

음...우리 가족은 그저깨 미국에 왔어. 영주권을 받아서 왔고 , 그린카드는 아직 도착 전이지. 따라서 Sin No.나 어떠한 신분증도 아직 발급받은게 없어. 여권이 있고 ( 임시 영주권 부분을 펼쳐 보여 주었다 ) 난 집이 필요하지.^^

이민 왔다고? 이틀 전에? 적잖히 당황한듯 했다. 제프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 아까의 그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최종 보스를 만날 시간이다.


그녀가 내게로 걸어온다. Hello...뭐 인사..ㅋㅋ

크레딧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회사의 정책을 이야기 하려 한다.

음..일년치 디파짓을 하라면 하지. 원한다면..( 무례하게 보이지 않을 시점에 말을 끊었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제프도 나를 본다. 살짝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침묵 뒤에 말이 이어졌다. OK...


앉아서 서류를 적기 시작했다. 내가 적을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적었고 제프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도 적었다. 보험을 들어야 하고 , 전기를 연결해야 한다. 

If you mind...(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빨리 이생활 접어야 하는데...ㅠㅠ)

제프는 한번 씩 웃더니 수화기를 든다. 우선 보험이다. 제프가 다 하고 나서 전화를 바꿔준다. Ok,Ok,Good...보험 끝.

전기의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로 끝냈다. 인터넷이랑 등등은 스스로 하란다. 당연하지...땡큐 제프...^^


디파짓은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단 한달의 디파짓도 없이 랜트를 하고 바로 들어와 살기로 했다. 낼 들어갈게..

제프는 그건 안된다며 3일 후 가능하다고 한다. 좋아 3일 뭐 기다릴 수 있지.


사실 한국에서 살던 집 보다는 조금 작고 허름하지만 호텔에서 쩔어버린 아이들은 집이 마치 궁전처럼 보인다고 한다. 일류 호텔 같아요..ㅋㅋㅋ 물론 짐이 들어오지 않아 좀 더 커보이는 것도 있지만 인간이란 정말 상대적인 동물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Over the h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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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ojan 2018.05.03 02:16 신고

    걱정할 필요도 그렇다고 방심하지도 말아야 하는 게 이민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을 배워가면서 그것에 익숙해지면 됩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5.03 09:43 신고

      님의 말씀에는 항상 연륜이 묻어나는 현명함이 느껴집니다. 블로그 하기전엔 몰랐는데
      이런 댓글이 참 힘이되요..
      마음이 작아져 있을때는 특히 더 그런거 같아요. 저도 다른곳에 남들의 삶에도 살짝 방문하고 그래야 겠어요..
      늘 감사합니다..^^

  2. jshin86 2018.05.03 07:30 신고

    축하드려요.
    인상이 좋으셨던가 봐요 디파짓도 없이 okay 를 한걸 보면요.

    • Dreaming Utopista 2018.05.03 09:48 신고

      ㅎㅎ
      가족 천체가 주는 인상에 신경을 많이 쓰긴 했어요.. 전 그게 세상사 모두에 통용된다고 믿는편이라서 ..ㅋㅋㅋㅋ
      물론 사실은 아마 그 집이 한 세달 비어있었다던지 뭐 그런걸 겁니다. 하지만 늘 우리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야..라고 믿고삽니다..^^

    • jshin86 2018.05.03 10:33 신고

      인상은 진짜 생각보다 중요 하긴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3. 고코더 2018.05.04 08:35 신고

    생생한 이민 적응기
    자주오겠습니다

  4. 프라우지니 2018.05.05 01:30 신고

    집을 정말 순식간에 구하셨네요.^^

    • Dreaming Utopista 2018.05.05 13:48 신고

      네..필요하면 얻어지는게 순리인것 같습니다. 얼마나 필요하냐가 문제인데...
      왜 원하는것마다 간절해 지지 못하는걸까요?
      그 원리를 알면 좋을것 갗은데...ㅎㅎㅎ

미국 이민은 가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민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세갈래로 갈라져 살고있습니다. 아이 엄마와 아이들은 미국에 있고 저는 한국에 주로 있지요.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던 구름이( 골든레트리버 )는 시골 처부모님 댁에 가 있습니다.  

혼자있는 저도 그렇지만 제가 없는 미국가족들의 결핍도 큰 문제 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가족과 떨어져 있는 구름이의 근황도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닙니다.


우리집 강아지 구름이 사진우리집 강아지 구름이 사진


이렇게 떨어져 살면서 카카오톡으로 주로 안부를 묻고 있지만 자주 소통하지는 못합니다. 얼마전 아이엄마 에게서 한숨섞인 연락을 받았습니다. 톡으로 하던 중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전화를 합니다. 내용은 첫째 아이의 학교상담 결과 였습니다. 대학진학에 대한 내용 이었습니다.


아이는 아직 10학년 입니다. 아이가 정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것이 9학년 부터 였고 그 사이 부족한 학과공부를 열심히 따라온 결과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학상담 결과는 그 어중간 함이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수학과 과학에서 상당한 학업 성과를 내고 있는 모양 입니다. 아이는 공립 학교를 다니고 있고 ,학교의 운영시스템은 학생들을 그레이드 별로 분리하여 교육하고 있는 시스템 입니다. 높은 클라스의 학생들은 당연히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이 자연스럽 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 조건은 높은 학업성적 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는 우선 제2외국어가 없고 ( 아직 영어도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 봉사활동 등의 기타 활동이 전무 합니다.

그 상태로는 원만한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진 겁니다. 


선생님의 대안은 이미 필수과목의 이수가 완성되어 가는 가운데 수학계열의 수업은 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상태이니 차라리 11학년에 과목들을 타이트하게 이수 해서 조기 졸업을 시켜 줄테니 적당한 College 로 우선 들어 가라는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내년 9월에는 대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선생님은 이대로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만약에 대입에 Pass못하면 College를 가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 편입할 때 더 불리하다고 합니다. 차라리 조기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착실히 준비해서 편입하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는 시나리오 인것 같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그런 시나리오에 맞추어 향 후 필요시에 추천서 등을 준비 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는지 그 편이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거라는 이야기를 꼭 강조하며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조기졸업...

예전에는 천재들이 더이상 배울게 없어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 했었습니다. 그 안에 이런 사정들을 내포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죠. 무언가 찜찜하면서 마음을 누르는 개운하지 못한 이야기 였습니다. 생각이 많아 지더군요...


우선 대학에 가야 하니 서둘러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차도 있어야 하구요. 등록금은 무척이나 싼 학교가 집 주변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학교를 적극 추천 했다고 합니다. 우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상담은 엄마가 한게 아니고 아이가 직접 선생과 이야기 나눈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 엄마는 그런 대화를 나눌 언어적 준비가 아직 갖추어 지지 못했습니다.ㅠㅠ


아이와 통화를 하면서 참 여러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많이 성장 했더군요. 미안해 하는 저에게 아이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창피해 하고 준비 못해준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 했었습니다. 생각보다 강하고 크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이미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학군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아들의 판단은 지금 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것 보다 우선 대학으로 진학해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준비하는 것이 본인의 진로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더군요. 그에 대한 준비도 착실히 한걸음 한걸음 스스로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면 이제 10학년이 될 동생의 전학을 권유 하더군요. 학교의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차 후 작은 아이와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뭐라 말 할것도 없이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고, 널 믿는다. 항상 네가 자랑 스럽다. 이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더는 뭐라 해 줄 충고도 , 덧붙일 이야기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아이들이 이제는 한 남자로 성장해 가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합니다.


그날 밤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는 오랜세월 살아왔음에도 규정하기가 어렵더군요. 냉장고에 맥주를 꺼내 마셨습니다. 상당히 오래전 부터 들어있던 맥주 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게 몇년은 된것 같습니다. 책을 펼쳐놓고 읽으며 기네스 한캔을 다 마시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1. Mr. 코알라 2018.04.28 14:38 신고

    마음이 짠해지는 글이네요...

    • Dreaming Utopista 2018.04.28 15:56 신고

      안녕하세요^^
      주말 글 치고는 조금 무겁나요?
      그러려면 즐거운 일이 많아야 할텐데...^^
      행복한 주말 되세요...^^

  2. 2018.04.28 14:57

    비밀댓글입니다

    • 2018.04.28 16:06

      비밀댓글입니다

    • 2018.04.28 17:14

      비밀댓글입니다

  3. 2018.04.29 17:22

    비밀댓글입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4.29 17:30 신고

      답글 감사합니다.
      다만 다른 분들의 충고 중에 편입시 CC에 대한 이력이 앞으로 아들의 인생에 낙인처럼 남아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가 있어..막연한 불안감이 들어서요...
      일류대를 나와 하이클라스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니 나쁘지 않겠지만 근본적으로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미래의 어느시기에 , 아들의 어느 상황에 지금의 이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굴레가 생긴다면 어쩌나 하는...
      그냥 막연한 걱정 입니다.
      저도 살아보니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거 압니다만...

  4. 뉴질랜드 외국인 2018.05.01 05:56 신고

    구름이 너무 귀엽네요! 댓글보고 블로그 방문합니다. 이래저래 따로사시느라 힘드실텐데, 많은 격려 실어 보내드립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5.01 09:35 신고

      ㅎㅎ 방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녀석 데리고 들어가면 삼단 합체죠..^^
      언젠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5. 2018.05.01 19:50

    비밀댓글입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5.01 20:35 신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내셨으니 뿌듯 하시겠습니다.^^
      저보다 먼저 경험하신 선배님들의 조언이 무척 큰 힘이 됩니다.
      아이랑 이야기 해 본 결과 본인의 의지가 확고히 서 있더라구요.
      혹시 쉬운길을 선택하려는 나약한 결정인가 싶어 걱정도 했는데 이미 장래에 어떻게 해야 겠다는 플랜을 딱 세워놓고 있더군요. 뭐 장성해 가는 아들을 두고 제가 뭘 강요하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결정한 바 임에는 더 뭐라 할 말이 없어 응원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지금 상태는 저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진 상태 입니다.
      이렇게 신경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6. 2018.05.03 06:27

    비밀댓글입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5.03 10:08 신고

      방문 감사합니다. CC에 대한 부분은 이미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 사는데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고 ,온라인에서 상담한 이야기 입니다. 다만 저는 그분의 의견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합니다.^^ 그 분의 경험에서는 그런 케이스가 있었던 거겠죠. 그런 소중한 경험을 일면식 없는 저를 위해 알려준것이니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물론 님의 의견도 소중합니다. 더욱이 비슷한 경험의 소유자시니까요.^^ 아들의 건에 대한 저의 의문의 목적은 아들과의 대화를 위한 질문지의 역할 이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니 여러 의견을 듣고 저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출된질문 모두 아들에게 물어보았죠. 그때 들은 아들의 대답들이 저는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대화를 시도하는건 자칫 그냥 테클로 느껴질 수 있기에... 저의 무지를 해결하고자 님들의 수고를 요구한것 같아 죄송하지만 모르는걸 물어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새상 입니까?^^ 아들은 제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인도 가지고 있던 의문 이었던 게지요..자기 안에서 그 질문들을 충분히 숙고한 뒤의 결정이라면 전 믿고 따를 수 밖에요. 장문의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복받으실 겁니다.^^ 늘 행복하세요....

버거킹의 "베이컨 치즈 더블와퍼"를 삼개월 동안 매일 먹었습니다.


사실 햄버거를 좋아 하기는 하지만 삼개월 내내 그것만으로 점심을 때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것도 발생을 하더군요.


캐나다 이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무슨일로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할지 상당한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전공인 사진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만만치 않은 상황 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급여가 문제였죠. 사실 제가 한명의 Photographer 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적어도 3년 정도의 도제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야 합니다. 스튜디오의 입장에서 저는 월급을 주기 보다 수업료를 받아야 하는 학생인 셈이죠


그러한 고민끝에 전 웹디자인 을 공부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무엇이든 공부하지 않고 뛰어들기에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도 덜 한 시기 였구요. 기본적인 포토샵 등의 그래픽 프로그램 이미 습득한 상황이니 웹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될 것 같았죠.


그러 그러한 과정을 거쳐 웹 디자이너가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유학원웹사이트를 만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유학원에 취직을 하게 되었지요. 문제는 웹사이트가 다 만들어지고 나자 제가 할 일이 적어졌습니다. 하지만 당 유학원의 주력 국가가 캐나다 였기 때문에 저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마치 이미 쓰여진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듯 살아지는 걸까요?


상담을 하고 사이트에 넣을 컨텐츠를 알려면 그곳에 가서 직접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밴쿠버 지사로 발령을 받아 캐나다로 넘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직원들은 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더군요. 본인들의 자리를 빼앗으러 온 것으로 보여졌나 봅니다.

Vancouver Airport Arrival Hall

사설이 길었네요..

그래서 제가 맡게 된 임무는 밴쿠버로 넘어오는 유학생 및 그 가족들의 픽업과 랜딩 업무 엿습니다.


공항에 기다렸다 그들이 나오면 픽업해서 숙소로 데려다 주는것이 이 일의 첫 시작입니다.

캐나다로 넘어오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오로지 찾고 의지하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저인거죠.

공항 출국장에서 나와서 피켓을 들고 있는 저를 보자 마자 그들의 눈에 안정이 돌아오고 굳어진 어깨가 펴지는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로 나오자 마자 저를 찾는데 제가 없으면 그들은 미아가 되어버린 심정에 사로잡힙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패닉에 빠지고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 합니다.


그들이 나오는 시각은 정말 예측할 수 없고 천차 만별 입니다. 짐을 잃어버린 사람 , 이민국에 끌려가 고역을 치루고 있는 사람 ,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나 빨리 나오는 사람. 정말 누구 하나도 예측대로인 경우가 없죠. 제가 식사를 하고 있는동안 나와서 우왕좌왕 하다가 공중전화를 찾는데 엄청 고생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제게 전화를 걸어서 전화받고 그 자리에 가 보니 엉엉 울고 있던 여자학생이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었다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일이 안되려면 정말 여러가지가 막히는 법이니까요.지금은 휴대전화를 로밍해서 가져오니 그런 경우가 덜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식당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화장실도 넉넉한 시간에 미리 다녀왔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했죠. 밴쿠버 공항에 버거킹 이있습니다. 그곳에서 게이트가 바로 보이고 게이트에 나와서 찾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엇죠. 그래서 그곳을 제 아지트로 정하고 식사도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에 이르른 것 입니다.


Vancouver Airport Arrival Hall 2


그들이 떠나기 전 항상 서울 사무소 에서 제가 만들어 둔 팜플렛을 손에 쥐어주고 보내도록 했습니다. 제 사진과 전화번호 ,그리고 출국장으로 나와 왼쪽을 딱 보면 버거킹이 있습니다. 그곳에 제가 있습니다. ( 20년 전 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습니다.^^ )


숙소에 데려다 주고 나면 공식적인 제 일은 끝이 납니다. 물론 가족이 같이 와서 랜딩서비스를 해 주어야 하면 일주일을 꼬박 그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오전에 픽업 업무를 마치자 마자 부터 하루 종일 그들의 전화기를 개통해 주고 , 차를 사고 , 미리 조건에 맞게 물색해 둔 집을 보러 다닙니다.집이 결정되어 지고 나면 가구와 전자제품을 사러 돌아다닙니다. 


가끔 캐나다에서 온 가방을 보았다며 특정 제품을 고집해 찾으러 다녀야 하는 일도 발생 합니다. 새벽 세시에 난방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하는 아이 어머니도 있습니다. 한 밤중에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 전화하는 보호자도 있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찾아가 문제 해결을 도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아이를 업고 뛰었구요.


사실 귀찮고 성가시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출국장에서 저를 보면 환하게 펴지는 그들의 얼굴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캐나다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지인이 저 인것 입니다. 그 막막한 가운데 알고있는 저마저 그들을 귀찮아 하며 대한다면 그들의 유학 생활이나 이민 생활은 상처받고 구겨져 버린 체 시작 됩니다. 그 상처가 아물고 주름이 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 합니다. 그런 그들이 이후에 오는 한국인에게 동포의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게 될까요?


전 정말 그들에게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저의 서비스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겁니다. 자기의 눈높이에 따라 생각하게 되는 법 이니까요.


이민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충고가 "한국사람 조심해라" 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없고 , 이해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왜 그런말이 나오는건 줄은 압니다. 앞에 소개했던 저희 가게 "Mother's Taste"는 믿었던 아버지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접었습니다. 정말 그런 현실이 싫었습니다. 저희가 이민 간다고 해서 캐나다 사람 되나요? 시민권을 따면 미국인 인건가요?


전 캐나다 이민생황을 접어놓고 지금은 미국으로 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전 한국인이죠. 주변에 중국 이민자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요즘은 베트남 사람들도 많이 보이구요. 그들은 정말 잘 뭉칩니다. 서로서로 돕고 ,새로 이민온 이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려 노력 하더군요. 


저는 우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한명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정말 그리운게 많습니다. 이렇게 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와 각자의 사정이 있겠죠. 하지만 누구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전 작으나마 제가 가진 온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쓰고 나니 횡설 수설 제 바램만 장광설 늘어놓았네요.

하지만 읽는 분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실거라 믿습니다.^^


같이 살아 가는데 온기 말고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공감의 온기도 나누어 주세요...^^


  1. 담터댁 2018.04.21 14:53 신고

    케이님 블로그 타고 왔는데 버거킹에서 저녁 먹게됬어요 ^^

    • Dreaming Utopista 2018.04.21 15:08 신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저도 아직도 버거킹 많이 먹습니다.^^
      혹시 한국이시면 할인쿠폰 잊지 마세요..^^ㅋㅋ

  2. 담터댁 2018.04.21 15:15 신고

    외국 버거킹이 더 짜고 큰가요??외국에 나가본적이 없어서용

    • Dreaming Utopista 2018.04.21 15:34 신고

      ㅎㅎ
      제가 음식에 민감하지 못해서...
      버거의 크기는 많은 차이 없는것 같고 맛도 비슷해요...
      후렌치 후라이가 엄청 짜요...
      또 거기다가 소금을 뿌려 먹더라구요...아휴...
      우린 캐첩 찍어 먹는데 북미사람들은 보면 소금을 많이 뿌리더라구요...

  3. sunny 2018.04.21 20:31 신고

    참 치열하게 사셨네요... ^^

    • Dreaming Utopista 2018.04.21 20:34 신고

      그러게요...
      당시에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제가 참 짠하네요..ㅎㅎㅎ

  4. 2018.04.22 01:36

    비밀댓글입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4.22 11:03 신고

      그렇게 이야기 해 주시니 제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사실 이번 미국 가서는 정말 대단한 환대와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래도 되나..할 정도 였습니다.
      그때 생각하길 예전에 내가 해놓은 일에 보답을 받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저도 얼른 적응하고 자리 잡아서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 그런 따뜻한 도움과 환대 드리고 싶네요..^^

  5. TheK2017 2018.04.23 03:59 신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호의를 둘리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요.
    그런 사람인지 가릴 수도 없구요.
    다만 당신이 옳고 그렇게 산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Dreaming Utopista 2018.04.23 11:44 신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도 이런 과찬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님에게도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하겠습니다.^^

  6. 밤익는냄새 2018.04.23 18:07 신고

    캐나다에 처음 오는 분들에게 Utopista님은 큰 의지이자 버팀목이겠어요. 본의 아니게 패스트푸드를 많이 드셨지만.. ㅎㅎㅎ 일에서 보람을 느끼시니 참 멋지세요^^

    • Dreaming Utopista 2018.04.23 18:21 신고

      ㅎㅎ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좀 그런게..님들의 방문을 받고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너무 자화자찬 같아서,,너무너무 쑥스럽습니다. 그때는 정말 제가 좋은 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누가 이렇게 해 주겠어...이렇게 생각하면서요...
      근데 생활 해 보니 그런게 몸에 베어잇는 분들이 주위에 산처럼 많습니다.ㅋㅋㅋ
      세상 아직까지 살만한 세상 입니다.^^

캐나다 이민 / 미국이민

토론토 공항

2016년 3월에 영주권을 받고 미국에 첫 발을 디딘지도 벌써 2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이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내가 또다시 이민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1997년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에 가있을 무렵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는 아버지의 발표가 있었다. 사실 이민을 가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이건 뭔가 하는 허무감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피부에 와닿지 않았기에 거부감도 없었다.   


1999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PR여권을 손에 쥐고 성급히 친구가 있다는 토론토로 거주지를 옮겼고 우선 급한대로 집을 얻어 당시 중학생이던 내 동생과 나 이렇게 둘만 한국에 남겨져 있었다. 토론토에 집을 얻고 친구가 하고 있다는 가게를 인수하고 나면 우리도 합류 하기로 하는 그런 시나리오 였다. 그해 겨울 쯤 부모님이 부랴부랴 한국에 오셔서 예전 사시던 집을 새로이 전세 주고 우리를 데리고 캐나다로 향했다. 에어캐나다를 탔던걸로 기억한다.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오랜 시간을 비행하고 (16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3끼를 먹고 간식까지 먹었다) 


도착한 토론토는 무척이나 추웠다. 생각 나는 건 어두운 저녁이라 그런가, 화려할 줄 알았던 국제도시 토론토의 공항은 예상보다 소탈해 보였던걸로 기억된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바깥 풍경은 온통 나무였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드넓은 잔디 마당을 보고 우리집이 주택이구나 생각했던 나는 적잖이 놀랐었다. 아파트라니 !! 적어도 내 시야에 다른 아파트 동은 보이지 않았다. 한동 짜리 아파트 인가? 그리고 입구로 들어서서 로비를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아파트에도 로비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쇼파가 있는 그런 로비는 호텔에나 있는 건 줄 알았었다^^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 했다. 여기가 외국이구나? 이 드넓은 스케일이란... 나중에 알게된것은 27층 이었던 우리 아파트는 토론토에서도 상당히 고급 아파트에 속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21층 이었다. 그날 밤 너무 피곤했던 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죽은 듯이 잘 잤다. 다음날 너무나도 창피한 사건이 날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체...     


아침에 일어나 21층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정말로 장관 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어느새 가게에 나가시고 없었다. 아침이 차려져 있어 부랴부랴 동생을 깨워 같이 먹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층 내려가서 문을 등지고 왼쪽으로 500m쯤 가면 스포츠 센터가 있으니 거기에 동생과 등록을 해서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하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파트 단지 내에 스포츠 센터가 있단다. Wow!!     


동생을 데리고 스포츠 센터를 찾아갔다. 슥 둘러보니 실내 농구장, 수영장 , 스쿼시 , 탁구장 , 실내 테니스 장...나열할 수도 없이 엄청나게 넓엇다. 그리고 공짜라니!!  입주민 등록을 해야 락키 키를 받고 사용을 할 수가 있다고 하여 당당히 사무실을 찾아갔다. 거기서부터 내 굴욕은 시작 되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접수 직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얼어붙고 말았다. 단 한마디!! 단 한단어의 영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코리아 헤럴드 어학원에서 1년을 공부하고 원어민 선생과 농담을 따먹던 내가?!!!  멍하니 서있던 나는 결국 들어왔던 문으로 황급히 나갔다. 그리고 괜히 가만히 있던 동생에게 버럭 화를 냈다. 넌 왜 암말도 안하고 서있냐?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동생이 내게 하고 싶었던 질문 이었겠지?


집에 돌아와 씩씩거리던 나는 도저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찾아갔다. 애먼 동생을 옆에 세워 두고 나는 당당히 외쳤다. 

I like swimming !!...ㅋㅋㅋㅋ  

I want play basketball...!!!ㅋㅋㅋㅋ  


직원은 나를 보며 어안이 벙벙한 지...눈만 껌뻑 껌뻑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나를 향해 물었다. 

" You want Registration form? "  

나 : Yes.....  

직원이 준 서류에 동 호수를 기입하고 라커키를 받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 카드를 받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게 될때까지 사실 말 못할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영어였다. 나의 이민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막을 열었다.

  1. Dreaming Utopista 2018.04.01 12:11 신고

    사진위치를 수정했더니 글이 뒤죽박죽 되어서 다시 편집 하여 넣었네요.
    안읽어 봤으면 뭔말인지 모를 수수께끼 글이 됬을 둣...

  2. 2018.04.02 05:24

    비밀댓글입니다

  3. Dreaming Utopista 2018.04.02 11:20 신고

    ㅎㅎ사실 글로 표현을 잘 못해서...
    정말 울고싶을 만큼 당황 했었어요..ㅋㅋ

  4. Deborah 2018.04.12 01:33 신고

    정말 진지하게 글을 읽어 내려 가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빵터졌어요. 하하하
    수영하고 싶고 농구를 좋아한다는 말 하하하. 말은 그렇게 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었던 직원분이 감사하네요. 하하
    유쾌한 출발이였네요.

    • Dreaming Utopista 2018.04.12 17:56 신고

      사실 당시에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거기 농구장이랑 수영장에서 정말 많이 놀았네요..
      다시 돌아 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추억 입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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