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되고 효자가 된다.


저는 늦은 나이에 이민을 가서 외국에서 학교 생활을 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

사실 그 당시의 제 나이는 한국나이로 26세 였기 때문에 부모가 이민을 간다고 해서 따라 갈 수 없는 나이였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 파일을 따로 수속하지 않고 아버지 파일에 합쳐서 수속을 해 주는 바람에

그 늦은 나이에도 아버지 따라 이민 갈 수 있었던 거죠.

아마도 수속 당시에는 대학 졸업반으로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상태 였기 때문에 학생으로 간주 해 준것 같아요.


제 동생은 당시 중학교를 졸업할 시기라 캐나다에 들어가서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 6개월에 한번꼴로 캐나다와 한국을 왕복하는 생활을 했었죠.

사람 운명이란게 정말 웃겨서 미국으로 이민 간 지금도 6개월마다 왕복하는 그 생활을 또다시 반복 하고 있네요.


이 이야기는 저는 한국에 주로 생활하고 있었고 나머지 가족만 캐나다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집 전경 : 10 MUIRHEAD RD APT


부모님이 한국으로 일을보러 들어오셨는데 그 일이 상당히 길어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 혼자만이 캐나다에 남아있게 되어버린 상황이었죠.

그 생활이 결과적으로 2년이상이 걸려버렸던 시기 입니다.


제 동생 혼자 남겨진 지 한 일년쯤 되었을 무렵 저는 한국에서 밴쿠버 지역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도 밴쿠버와 한국만을 왕복하던 시기였는데,

운좋게도 밴쿠버에 출장 갔다가 토론토에 갈 일이 생겨 몇년만에 동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와 7살이나 차이가 나는 어린 동생 이었기에 항상 맘에 걸렸었는데 너무나 고마운 기회였죠.


저녁무렵 집에 도착해서 만난 제 동생은 정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190cm 가 넘는 신장에 100kg 이상의 거구였던 제 동생이 70kg 까지 살이 빠졌더라구요.

집에는 녀석이 외롭기도 하고 넓은집 그냥 비워두는게 아깝다며, 룸메이트 들과 함께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동생까지 모두 4명의 남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집의 냉장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빈약했구요.


맥도날드 매장을 접수해 버리다!!

맥도날드 버거 세트 사진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시리얼로 대충 챙기고 체육관에 가 2:2 농구로 땀을 쭉 빼고나니

다운타운에 나가 이놈들에게 뭔가 먹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놈들이 원한 먹거리는 "맥도날드"였습니다.

소박한 녀석들...^^


매장에 들어가 카드를 건네주고 마음껏 주문하라며 호기롭게 앉아있던 나는 세상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위의 그림이 제가 예상하고 있던 그림 이였죠.


그런데 그들이 가져온것은 햄버거 50개 였습니다ㅣ.

일인당 버거를 10개씩 50개의 버거를 각각의 트레이에 담아서 가지고 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더욱 놀라운것은 후렌치 후라이도 없이 버거만 가지고 왔으며

콜라는 라지 사이즈 딱 한잔 이었죠.


그리고 버거는 99센트 짜리 치즈버거 였구요.ㅠㅠ


이게 도대체 뭔 일이냐며 묻자 "저희는 이렇게 먹어요" 라며 아무일 없다는듯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배가 고프기 때문에 그들의 외식은 배가 불러야 하고 일인당 5불을 넘지 않아야 한답니다.

오늘은 형이 쏜다니 특별히 10불을 쓴 거구요..


콜라는 리필이 되기 때문에 빨대만 5개 가져오고 큰 컵에 가득 담아 같이 먹으면 되구요.

누가 뭐라지 않는데 정말 제 얼굴이 다 화끈 거렸습니다.

그래도 그녀석들이 좋다고 하니 따라주기로 하고 먹기 시작 했습니다.

저는 세개째 먹으니 너무 물리고 질려 도저히 못먹고 동생들 먹으라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걸 또 다 먹어 치우더군요.

다먹고 나갈때는 걸으면서 먹어야 한다며 콜라를 가득 리필하구 나왔습니다.


나와서 길을 걷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참 복잡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TV를 보는데 맘이 안좋았습니다.


눈치 챘는지 녀석들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학생들이었고 처음엔 홈스테이에 용돈도 팡팡 쓰면서

즐겁게 유학생활을 만끽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점점 캐나다 생활에 익숙해져 가니 지금 자기에게 들어가는 돈이 얼마 정도 되겠구나 하는게 계산되고 , 

그러고 나니 부모님이 이 돈을 보내 주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룸메이트를 구하는 제 동생에게 부탁해서 집 월세를 쉐어하는 방법으로 돈을 아끼고

늦게온 녀석은 영어와 히스토리 등을 함께 공부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함께 살며 한번도 술파티 벌인적 없고 부모님 집이기 때문에 청소도 열심히 하면서 살구요.


이미 무슨전공으로 해야 할 지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대학교 투어도 같이 다녀왔더군요.

그런 돈은 아끼지 않고 쓰기로 했답니다.

녀석들의 생각이 나이에 비해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 뿌듯 했습니다.


유학생활 이라는게 그런것 같습니다.

어렸던 녀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게 만들고 , 자신의 미래 또한 스스로 결정 할 만큼 마음도 커지구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해 하는 부모님들이 가끔 저와 대화할 일이 생기면 전 늘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하니까요.

그렇게게 되도록 되어 있는거죠. 앞으로 나아 가도록...


아름다운 도시 서스캐쳐원 에 비극적인 차량충돌 사고가 발생 했습니다.


Google Photo : Saskatchewan landscape


캐나다 서부에 인구 96만의 소도시인 "Saskatchewan"에서 하키청소년팀을 태운 버스가

트럭과 충돌하여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 시킨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제 저녁 캐나다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이 버스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위해

Saskatchewan 의 주니어 하키리그 팀인 "HumboltBroncos"를 태우고

"Nipawin"마을로 이동 하는 중 트럭과 충돌 하였다고 합니다.


마을 전채가 충격에 휩싸인 사고에 대해 캐빈가링거가 험볼트 브롱코스를 대표하여

애도를 표하고 , 캐나다 서부 전역의 부모들이 이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 지금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Nipawin Hawks hockey team의 Darren Opp 대표 또한

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또한 코칭스텝과 호크스 팀의 선수들이 힘을 합쳐 돕울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 했습니다.


Mattew Blak's Twit Capture


버스에 탄 선수를 포함한 모두의 가족들은 교회에 모여 아이들과 조카가 무사하기를

기도 하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니파빈에 있는 아포스톨릭 교회의 Jordan Gadsby 목사는 교회안에 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그들 모두가 아이들의 무사함을 기도하며 생존자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 또한 

부모들이 겪고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극에 대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며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서스캐쳐원은 매니토바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과 정말 엄청나게 순수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기억 합니다.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가슴이 따뜻해 지는 인간미를 전해주었던 그 사람들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어나서 너무나 슬픈 마음에 이글을 적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자 수나 부상자의 상태를 듣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보니

저를 포함한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 해 봅니다.


원글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apr/07/canada-multiple-deaths-after-truck-collides-with-junior-hockey-team-bus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건 처음 봤다.


Google Capture : Large crowds of Toronto streets


아침을 먹고 집에 있는데 다급히 전화벨이 울렸다. 이상하게도 같은 벨인데 다급하게 울려서 

받아보면 꼭 급한 일이 있다.빨리 가게로 나오라는 어머니 전화였는데 정말 큰일이 난것 같은 

말투여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얼른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도착을 한 가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정말 큰일이 났구나 직감하고 사람들을 비집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는 또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가게는 온통 영화배우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대부분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식스펙을 장착하고 ,

그런 멋진 얼굴로 태연하게 상의탈의를 한 모습은 전에도 본적이 없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A group picture of handsome guys


모두들 하나같이 즐거워 보여 내 기분도 덩덜아 살짝 들뜨는 느낌 이었다.

아버지가 이야기 해 주시길 토론토에 큰 축제중 하나인 "Gay Pride Toronto"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인파들 이라고 했다.

사실 상당히 생경한 단어였고 , 정말 처음 보는 광경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꼭꼭 숨기고 들키는 날에는 집안이 풍비 박살 날 일 아닌가?


난 그들에 대해 동요하지도 반대 하지도 않는 입장 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사실 우리나라 살면서 접해보지 못한 단어 중 하나 아닌가?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부끄러워 보이는 이가 없었고, 

너무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각설하고 , 가게는 정말 인산 이해를 이루었고 우리 음식을 너무나 좋아했다.

특히 비빔밥과 김치는 정말 재료가 동이 날 지경 이었다.

사실 가게가 쉴 예정인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어디서 정보를 접하고 

오늘은 열어야 한다며 특별히 가게를 오픈한 날이었다.

안열었다면 정말 후회 할 뻔 했다.


어머니는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그들과 연신 대화를 나누며 손으로는

열심히 김치를 담고 계셨다.

그들에게 맛보라며 무료로 손마다 들려줘서 내보내는 바람에 한달은 써야 할

김치가 모두 동이나 버렸다.

한명이 맛있다며 따로 사 갈 수 없냐고 물었는데 어머니가 그냥 싸 주신거다.

다른 사람들도 모른척 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모두 한봉다리 씩 김치를 들고 나가는게 정말 우스꽝 스러운 풍경이었다.


Gay pride Toronto 2018


살면서 그렇게 유쾌한 사람들을 본적이 드물다.

그들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만약 있었더라도 정말 한방에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정말 가보고 싶다.


그때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고 다르랴?

그 유머러스함과 자유로움이...

지금처럼 SNS가 있었다면 정말 모두 친구추가 했을텐데...


떠나고 싶다.

그 자유로움에 흠뻑 빠져 나 자신을 잊고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그러려면 식스팩 하나쯤 마련 해야 할텐데...

없어도 뭐 한번 미쳐보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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